밤 열한 시, 냉장고 문을 활짝 열고 그 앞에 선다. 딱히 배가 고픈 건 아닌데 뭐가 있나 위 칸부터 아래 칸까지 훑는다. 찬 바람이 발등으로 쏟아지는 게 느껴진다. 결국 아무것도 꺼내지 않고 문을 닫는다. 그러고는 냉장고가 웅웅 도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냉장고 전기를 두고 흔히 하는 말들이 있다. 그럴듯하지만 반쯤 틀린 것도 있고, 거꾸로 알고 있는 것도 있다. 하나씩 짚어 본다. 그 전에 한 가지만 기억해 두면 나머지가 쉽게 풀린다. 냉장고는 안을 차갑게 ‘만드는’ 기계라기보다, 안의 열을 밖으로 ‘퍼내는’ 기계다. 안에서 냉매가 열을 흡수하고, 압축기가 그 냉매를 눌러 뒤쪽이나 옆면·바닥의 방열 부분으로 보내 열을 내보낸다. 전기는 대부분 이 압축기가 도는 시간에 든다. 안으로 열이 많이 들어올수록, 밖으로 열이 잘 안 빠질수록 압축기는 더 자주, 더 오래 돈다.
“문 잠깐 여는 건 별 차이 없다”
실제로는 문을 여는 순간 무거운 찬 공기가 아래로 쏟아지고, 그 자리를 방 안의 따뜻한 공기가 채운다. 문을 닫으면 압축기는 그만큼을 다시 식혀야 한다. 한 번은 작아 보여도 하루에 여러 번, 그것도 열어 놓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도는 구간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아래 그림처럼 같은 냉장고라도 문을 자주 연 날은 압축기가 쉬는 틈이 짧아진다.

이렇게 한다 꺼낼 것을 정하고 연다. 무엇이 어디 있는지 알면 서 있는 시간이 짧아지니, 같은 종류끼리 바구니에 모으고 자주 꺼내는 건 눈높이에, 오래 둘 건 안쪽에 둔다. 장 본 날에는 한꺼번에 넣어 여닫는 횟수를 줄인다. 뜨거운 음식은 한 김 식혀서 넣되, 실온에 너무 오래 두는 것도 좋지 않으니 넓은 그릇에 나눠 담아 빨리 식힌 뒤 넣는다.
“냉장고는 장 사이에 꼭 맞게 넣어야 깔끔하다”
실제로는 열을 내보내는 기계를 사방이 막힌 곳에 넣으면 열이 빠질 데가 없다. 빌트인 전용이 아닌 일반 냉장고를 붙박이장 사이에 밀어 넣고 옆과 위로 손바닥 하나 들어갈 틈도 없다면, 옆면이 손에 닿을 만큼 뜨겁고 소리가 쉬지 않는 일이 생긴다. 가스레인지·오븐·전기밥솥 바로 옆이나 오후 햇볕이 정면으로 드는 창가도 같은 이유로 불리하다. 여름 베란다에 둔 김치냉장고가 오래 도는 것도 주변이 뜨거워서다.
이렇게 한다 설명서에 적힌 뒷면·옆면·윗면 간격을 확인하고 그만큼 앞으로 뺀다. 숫자는 모델마다 다르니 설명서를 따른다. 자리를 옮기기 어렵다면 위에 물건을 쌓지 말고, 햇볕은 블라인드로 가린다. 겉으로 드러난 방열부에 먼지가 두껍게 앉았다면 부드러운 솔이나 청소기로 털어 낸다. 다만 청소 전에 전원을 뽑아야 하는지, 어디까지 손대도 되는지는 설명서를 먼저 보고, 덮개를 열어야 하는 구조라면 서비스에 맡긴다.
하나 더. 바닥이 기울면 문이 끝까지 닫히지 않을 수 있다. 문이 저절로 살짝 벌어지는 느낌이 들면 높이 조절 다리로 수평을 맞춘다. 앞쪽을 아주 조금 높게 두면 문이 스스로 닫히는 쪽으로 맞춰진다는 안내가 많지만, 정확한 방법은 역시 설명서에 있다.
“온도는 낮게 해 둘수록 안심이다”
실제로는 필요 이상으로 낮춘 만큼 압축기가 더 일한다. 많은 제조사가 냉장실은 3℃ 안팎, 냉동실은 영하 18℃ 안팎을 기본값으로 둔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이 근처가 음식 보관과 전기 사이의 균형점이다. 더 흔한 함정은 ‘급속 냉동’이나 ‘강냉’이다. 장을 본 날 한 번 눌러 두고 잊기 쉽다. 일정 시간 뒤 저절로 풀리는 모델도 있지만 계속 켜져 있는 모델도 있다.
이렇게 한다 표시창에 급속 기능 아이콘이 남아 있는지 가끔 본다. 채소 칸 끝이 살짝 얼어 있다면 온도가 너무 낮거나 강냉이 켜진 채일 수 있다. 한 칸씩만 올려 보며 우리 집에 맞는 값을 찾는다. 계절마다 크게 바꿀 필요는 대개 없다. 요즘 냉장고는 주변 온도에 맞춰 스스로 운전을 조절하는 경우가 많아서, 여름에 음료가 덜 시원하면 한 칸 낮추고 겨울에 채소가 얼면 한 칸 올리는 정도면 된다.
“패킹은 찢어져야 바꾸는 것이다”
실제로는 찢어지지 않아도 틈은 생긴다. 음식물이 묻어 굳거나 고무가 딱딱해지면 문을 닫아도 어딘가 헐겁고, 그 틈으로 바깥 열이 계속 스며든다. 눈으로 봐서는 잘 모른다.
이렇게 한다 영수증처럼 얇은 종이 한 장을 문과 본체 사이에 끼우고 문을 닫은 뒤 당겨 본다. 힘없이 쑥 빠지면 그 자리가 헐겁다. 위·아래·손잡이 쪽·경첩 쪽을 각각 두세 군데씩 돌아가며 본다. 헐거운 곳은 젖은 행주로 닦고 다시 시험한다. 그래도 틈이 남으면 패킹이 굳었거나 찢어진 것이니 제조사에 교체 부품을 문의한다.

“냉장고는 꽉 채워야 냉기가 지켜진다”
실제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냉장실을 빈틈없이 채우면 찬 공기가 돌 길이 없어 구석까지 식히는 데 오래 걸린다. 특히 안쪽 벽의 냉기 구멍 앞을 큰 반찬통이 막으면 그 칸만 덜 차가워지고, 센서는 계속 더 식히려 한다. 냉동실은 사정이 다르다. 어느 정도 채워 두는 편이 낫다는 말이 흔히 쓰이는데, 얼어 있는 음식끼리 서로 냉기를 지켜 주기 때문이다. 냉동실이 텅 비었다면 얼린 물병이 도움이 된다는 말도 같은 이유에서 나온다.

이렇게 한다 냉장실은 여유 있게, 냉동실은 적당히 채운다. 김치통을 맨 위 칸 안쪽에 밀어 넣었다면 냉기 구멍 앞에 한 뼘쯤 비워 둔다. 냉동실도 꽉 막힐 만큼 넣으면 공기가 돌지 않으니 그 선은 넘기지 않는다. 성에가 두껍게 끼는 오래된 냉장고라면 성에를 때때로 없애야 효율이 떨어지지 않는다.
“밤에 잠깐 꺼 두면 그만큼 아낀다”
실제로는 다시 켜면 안의 온도를 처음부터 끌어내려야 해서 압축기가 오래 돌고, 음식 보관에도 좋지 않다. 아끼려다 음식만 상하기 쉽다.
이렇게 한다 오래 집을 비워 냉장고를 아예 비울 때가 아니라면 켜 둔 채 위의 습관을 지킨다. 오히려 따져 볼 것은 두 번째 냉장고다. 김치냉장고나 보조 냉동고가 거의 빈 채로 돌고 있다면 내용물을 한쪽으로 합칠 수 있는지 본다. 그리고 오래 쓴 냉장고가 예전보다 눈에 띄게 오래 돌고, 온도를 낮춰도 잘 시원해지지 않고, 옆면이 유난히 뜨겁다면 끄고 켜기보다 점검을 받아 볼 때다. 새 냉장고를 고를 땐 에너지소비효율등급 라벨의 월간 소비전력량을 같은 용량끼리 비교하고, 집 식구 수와 장보기 습관에 맞는 크기를 고른다.
설치·온도·정리, 표 한 장으로
위 이야기를 냉장고 앞에서 바로 대조해 볼 수 있게 한 장에 모았다. 오른쪽 칸에 해당하는 게 있으면 그것부터 손본다.
| 볼 곳 | 이렇게 둔다 | 이러면 손본다 |
|---|---|---|
| 설치 · 주변 간격 | 설명서 권장 간격 확보 | 벽·장에 꽉 끼어 있음 |
| 설치 · 열원 | 가스레인지·창가와 떨어짐 | 열원 바로 옆, 직사광선 |
| 설치 · 방열부 | 먼지가 얇음 | 먼지가 두껍게 덮임 |
| 온도 · 설정값 | 제조사 기본값 근처(흔히 냉장 3℃·냉동 -18℃ 안팎) | 필요 이상으로 낮음 |
| 온도 · 급속 기능 | 쓰고 나면 꺼져 있음 | 아이콘이 계속 켜져 있음 |
| 문 · 패킹 | 종이가 단단히 물림 | 종이가 쉽게 빠짐, 찢어짐 |
| 정리 · 냉장실 | 냉기 구멍 앞이 비어 있음 | 빈틈없이 꽉 참 |
| 정리 · 냉동실 | 적당히 채움 | 텅 비었거나, 공기가 안 돌 만큼 꽉 참 |
이 가운데 가끔 해 줄 일만 따로 떼면 아래 달력처럼 된다.

오늘 밤 할 일은 하나면 된다. 다음에 냉장고 앞에 섰을 때 문을 열기 전에 꺼낼 것부터 정하고, 닫고 나서 종이 한 장을 문틈에 끼워 본다.
설치 간격·온도·청소 방법은 제품마다 다르니 내 냉장고의 설명서와 제조사 안내를 먼저 따른다. 이 글은 특정 제품 구매를 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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