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쯤이었다. 보고서를 마저 쓰려는데 오른쪽 손목이 뻐근하고 어깨까지 묵직했다. 고개를 들어 책상을 보니 이유가 보였다. 숫자 키패드까지 달린 큰 키보드가 책상 한가운데를 차지했고, 마우스는 그 오른쪽 끝에 있었다. 마우스를 잡을 때마다 팔을 쭉 뻗고 있었던 거다. 손바닥을 통째로 얹어 쥐는 버릇이 있는데, 쓰던 마우스는 손에 비해 작고 납작해서 손가락이 늘 오므라져 있었다.
그날 키보드를 왼쪽으로 옮겨 글자 치는 부분을 몸 앞에 맞추고, 마우스를 몸 가까이 당겨 놓았다. 그러고 나서야 알았다. 키보드와 마우스는 따로 고르는 물건이 아니라 한 책상 위의 한 자세라는 것을. 그리고 ‘좋은 키보드’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그래서 이 글은 제품 종류가 아니라 쓰는 사람을 기준으로 나눴다. 내게 해당하는 칸만 읽어도 된다.
먼저, 낱말 몇 개만
아래에서 자주 나오는 말들이다. 한 번 훑어 두면 상품 설명이 훨씬 잘 읽힌다.
멤브레인 — 고무 돔을 눌러 접점을 만드는 방식. 저렴하고 비교적 조용하다. 컴퓨터에 딸려 오는 키보드가 대부분 이것이다.
펜타그래프(시저) — 노트북 키보드처럼 낮고 얇다. 가볍게 칠 수 있고 들고 다니기 좋다.
기계식 — 키마다 독립 스위치가 있어 손맛이 분명하고 내구성이 좋은 편이다. 값이 높고, 스위치에 따라 소리가 크다. 스위치는 흔히 걸리는 느낌과 딸깍 소리가 함께 나는 것, 걸리는 느낌만 있는 것, 걸림 없이 부드럽게 내려가는 것으로 나눈다.
무접점 — 고무 돔 대신 전기적 변화를 읽는다. 매끈하고 균일한 느낌, 소음은 중간쯤.
풀 배열 · 텐키리스 · 65% · 60% — 풀 배열은 숫자 키패드까지 다 있다. 텐키리스는 숫자 키패드를 뺀 것(흔히 87키). 65%·60%는 방향키나 기능키 줄까지 줄인다.
팜 · 클로 · 핑거팁 — 마우스 쥐는 법. 손바닥 전체를 얹는 팜, 손바닥 뒤쪽만 닿고 손가락을 세우는 클로, 손끝으로만 잡는 핑거팁.
DPI — 마우스를 조금 움직였을 때 커서가 얼마나 움직이는지 정하는 값. 클수록 좋다는 뜻이 아니다.
수신기 · 블루투스 · 멀티 페어링 — 무선 연결은 USB 수신기(동글)를 꽂는 방식과 블루투스가 있다. 멀티 페어링은 버튼 하나로 연결할 기기를 바꾸는 기능이다.
하루 종일 문서를 쓰는 사람
타이핑 시간이 길면 손맛이 생각보다 중요해진다. 오래 칠 거라면 기계식이나 무접점을 만져 볼 만하다. 다만 방식 자체보다 높이와 손목 각도, 키를 누르는 힘이 더 크게 작용한다. 키보드가 높거나 뒷다리를 세워 경사가 크면 손목이 위로 꺾인 채 치게 된다. 키가 높은 기계식이라면 손목 받침대를 함께 쓰면 편하다.
사무실처럼 옆에 사람이 있다면 소리가 먼저다. 딸깍 소리가 나는 스위치는 혼자 쓰는 방에서는 즐겁지만, 사무실이나 집에서 다른 사람이 자는 밤에는 부담이 된다. 저소음을 내세운 스위치도 있고, 조용하게 오래 치고 싶다면 무접점도 후보다. 같은 방식이라도 제품마다 느낌과 소음이 다르니, 매장이나 스위치 테스터로 직접 눌러 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

책상이 좁거나, 어깨가 뻐근한 사람
내가 이 칸이었다. 배열을 작게 하면 키보드 폭이 줄어든 만큼 마우스를 몸 가까이 둘 수 있어 팔이 덜 벌어진다. 아래 차트처럼 배열이 작아질 때 빠지는 건 주로 오른쪽(숫자 키패드, 방향·편집키)과 맨 윗줄이다. 글자를 치는 타자 영역은 거의 그대로다.

그래서 처방은 대개 텐키리스다. 60%처럼 아주 작은 배열은 공간 활용이 뛰어나지만 방향키와 기능키를 조합키로 눌러야 해서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지금 당장 키보드를 바꾸기 어렵다면 놓는 자리부터 고친다. 흔히 권하는 방법은 글자 치는 영역의 가운데가 몸 중심에 오게 두는 것이다. 풀 배열을 책상 가운데에 그대로 두면 숫자 키패드 폭만큼 타자 영역이 왼쪽으로 밀리고, 마우스는 그만큼 오른쪽으로 멀어진다. 키보드를 조금 왼쪽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마우스까지 거리가 준다.
표와 숫자를 많이 다루는 사람
숫자 입력이 많은 업무라면 풀 배열이 편하다. 그런데 책상도 좁다면? 텐키리스에 별도 숫자 키패드를 붙여 두고 필요할 때만 쓰는 방법이 있다. 숫자를 가끔 치는 정도라면 윗줄 숫자키로 충분하다. 넓은 표를 자주 본다면 마우스의 가로 스크롤 휠이 꽤 유용하고, 엄지 쪽 버튼은 앞으로·뒤로 가기에 편하다.
게임하는 사람
게임용 마우스 상자에는 DPI 숫자가 크게 적혀 있다. 하지만 숫자가 클수록 좋은 게 아니다. 모니터가 크지 않다면 운영체제의 포인터 속도와 함께 내 손에 맞는 값을 찾는 편이 훨씬 중요하다. 연결이 끊기면 곤란하니 연결은 유선이나 USB 수신기 쪽이 안정적이다. 블루투스 마우스가 자꾸 끊긴다면 다른 무선 기기와의 간섭, 거리, 배터리 부족, 절전 모드 진입이 흔한 원인이다.
마우스 패드도 장비의 일부다. 유리나 반짝이는 책상에서는 광학 센서가 움직임을 잘 읽지 못해 커서가 튀고, 거친 표면에서는 바닥 미끄럼 패드가 빨리 닳는다. 적당한 크기의 천 패드 하나로 조작이 안정되고 소음도 준다. 키보드는 손맛과 소리를 즐기는 쪽이라면 기계식 스위치를 직접 눌러 비교해 보고 고른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사람
노트북만으로 오래 일하면 화면이 낮아 고개를 숙이게 되고, 화면을 올리면 이번엔 키보드가 높아진다. 그래서 흔히 권하는 구성이 노트북 거치대로 화면을 눈높이 가까이 올리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따로 두는 것이다. 카페와 집을 오간다면 얇은 펜타그래프 키보드와 작은 무선 마우스를 파우치에 함께 넣어 다니면 어디서든 같은 자세를 만들 수 있다.
노트북 USB 포트가 모자라다면 수신기보다 블루투스가 낫고, 태블릿과도 오간다면 멀티 페어링 제품이 편하다. 충전식인지 건전지식인지, 충전식이면 USB-C로 충전되는지, 충전하면서도 쓸 수 있는지 본다. 맥과 윈도우를 함께 쓴다면 두 운영체제 키 배열을 전환할 수 있는 제품이 편하다. 회사 노트북이라면 보안 정책상 무선 수신기나 블루투스가 막혀 있지 않은지 미리 알아본다.
손이 작은 사람, 손이 큰 사람
마우스는 손 크기와 쥐는 방식이 먼저다. 내 경우처럼 손바닥 전체를 얹는 팜 그립이라면 크고 등이 높은 마우스가 편하다. 손이 작거나 손끝으로 잡는 핑거팁이라면 작고 가벼운 마우스가 낫다. 쥐었을 때 손바닥이 남거나 손가락이 꺾인다면 크기가 맞지 않는 것이다.

손목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악수하듯 손을 세워 쥐는 세로형 마우스도 고려해 볼 만하다. 손목이 덜 비틀린 자세라 편하다는 사람이 많지만, 처음엔 정밀한 조작이 어색할 수 있다. 왼손잡이라면 좌우 대칭형을 고르면 대부분 무난하고, 버튼 기능을 바꿀 수 있는지와 엄지 버튼이 양쪽에 있는지를 보면 더 편하다. 전용 소프트웨어로 버튼을 바꾸는 제품이라면 내 운영체제를 지원하는지도 확인한다.

어느 칸에도 딱 맞지 않는 사람
그럴 땐 두 가지만 정하면 된다. 키보드는 쓰는 곳의 소음 허용 정도와 숫자 입력 빈도, 마우스는 내 손 크기와 쥐는 법. 나머지는 그다음이다. 한글 각인이 있는지 같은 기본도 놓치지 말고, 고르고 나서도 가끔 키보드를 뒤집어 가볍게 털거나 부드러운 솔로 키 사이 먼지를 없애면 키가 뻑뻑해지는 걸 막는다.
어느 쪽이든 가능하면 매장에서 직접 쥐어 보고 눌러 보길 권한다. 그럴 수 없다면 결제 전에 반품 조건부터 확인해 두자. 손에 맞는지는 며칠 써 봐야 알 때가 많다. 그리고 손목이나 어깨가 계속 아프다면 제품을 바꾸기 전에 자세와 쉬는 습관부터 살피고, 그래도 이어지면 전문가와 상의하는 게 먼저다.
기능과 호환성은 제품마다 다르니 설명서와 제조사 안내를 먼저 확인한다. 이 글에는 추천 상품이 없다. 고르는 기준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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