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상세 페이지를 열 개쯤 띄워 놓고 해상도, 주사율, 응답 속도, HDR, 곡률 숫자를 번갈아 보다가 결국 창을 다 닫아 버린 적이 있다면, 이 글은 그런 사람을 위한 것이다. 특히 하루 대부분을 문서·웹·영상 앞에서 보내고 게임은 가끔이거나 아예 안 한다면, 사양표에 적힌 항목 가운데 절반은 지워도 된다.
고르는 일을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로 해 보자. 내 쓰임새에 비해 과한 것부터 지우고, 남은 몇 가지만 제대로 보면 후보가 금방 두세 개로 줄어든다.
이건 신경 안 써도 된다
아래는 광고에서 크게 내세우지만, 쓰임새에 따라서는 돈을 더 낼 이유가 없는 항목들이다. 내 경우에 해당하는지만 확인하고 넘어가면 된다.
게임을 안 한다면, 높은 주사율
주사율은 화면이 1초에 몇 번 새로 그려지는지다. 1000을 주사율로 나누면 한 장면이 화면에 머무는 시간이 나온다. 60Hz는 약 16.7ms, 144Hz는 약 6.9ms다.

이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건 빠르게 움직이는 게임에서다. 문서와 웹이 대부분이라면 60Hz로도 충분하다. 요즘은 100Hz 안팎 제품도 흔해서 스크롤과 마우스 커서가 조금 더 부드러운 정도의 덤은 있다. 게다가 높은 주사율은 컴퓨터가 그만큼 장면을 뽑아 주고, 단자와 케이블이 그 주사율을 지원해야 쓸 수 있다. 사무용 노트북에 240Hz 모니터를 물려도 노트북 출력 단자가 받쳐 주지 못하면 60Hz로 돌아갈 뿐이다.
응답 속도 표기 숫자
응답 속도는 제조사마다 재는 방식이 달라서, 상세 페이지의 숫자끼리 견주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사무용이라면 아예 지워도 되고, 게임용이라면 숫자 대신 리뷰에서 잔상 이야기를 찾아보는 편이 정확하다.
문서가 주라면, ‘HDR 지원’ 표기
HDR은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차이를 넓게 보여 주는 기능이다. 실제 효과는 모니터가 얼마나 밝게, 얼마나 깊은 검은색을 내느냐에 크게 달려 있어서, 지원 표기만 있고 밝기 여유가 적은 제품은 오히려 화면이 뿌옇게 보이기도 한다. 문서 작업이 주라면 우선순위에서 빼도 된다. 영상 감상이 목적이라면 표기보다 밝기·명암 성능과 실사용 후기를 본다.
24인치에서의 4K
4K는 화면이 클수록 장점이 커진다. 24인치에서는 글자를 읽으려면 배율을 크게 키워야 해서 체감 이득이 줄고, 게임을 한다면 그래픽 성능 부담만 커진다.
일반 크기의 곡면
곡면은 울트라와이드나 큰 화면에서 가장자리를 보기 편하게 해 준다. 24~27인치 일반 비율에서는 평면과 차이가 크지 않고, 조명 위치에 따라 반사가 생기는 방향만 달라진다. 작업 위주라면 평면으로 충분하다.
이건 꼭 본다
지울 것을 지우고 나면 남는 건 네 가지다. 이 네 가지는 쓰임새와 상관없이 누구나 확인해야 한다. 순서도 중요하다. 책상 깊이로 크기의 상한을 먼저 정하고, 그 안에서 해상도를 맞추고, 패널 성격을 고른 뒤, 마지막에 단자와 스탠드를 본다. 앞 단계에서 이미 많은 후보가 걸러지기 때문에 뒤로 갈수록 볼 것이 줄어든다.
책상 깊이
크기를 고르기 전에 줄자부터 꺼낸다. 큰 모니터를 얕은 책상에 올리면 화면이 너무 가까워서 창 하나를 보려 해도 고개를 좌우로 돌려야 하고, 며칠 지나면 목이 먼저 알아챈다. 앉은 자리에서 눈과 화면 사이 거리를 재 보고, 고개를 크게 돌리지 않아도 화면 양 끝이 한눈에 들어오는 크기까지만 후보로 남긴다. 두 대를 나란히 쓸 계획이라면 같은 크기·같은 해상도로 맞춰야 창을 옮길 때 크기가 바뀌지 않는다.

크기와 해상도를 한 쌍으로
같은 해상도라도 화면이 커지면 화소 하나하나가 커져서 글자 가장자리가 거칠어진다. 이 관계를 숫자로 보여 주는 게 인치당 화소 수(PPI)다. 대각선 화소 수를 대각선 인치로 나누면 되니 누구나 계산할 수 있다. 아래는 흔한 조합을 직접 계산한 값이다.

24인치 풀HD는 약 92, 27인치 QHD는 약 109가 나온다. 24인치 풀HD와 32인치 QHD는 밀도가 거의 같고, 27인치 풀HD는 그보다 낮다. 큰 화면에 풀HD를 고르면 글자가 거칠게 느껴지기 쉬운 이유다. 그래서 흔히 24인치 안팎은 풀HD, 27인치는 QHD 이상, 32인치 이상은 4K를 고려하라고 한다. 해상도가 높아 글자가 작다면 운영체제 배율을 키우면 된다. 선명함은 그대로 두고 글자 크기만 맞출 수 있다.
패널의 성격
IPS는 색 표현과 시야각이 좋지만 어두운 장면의 검은색이 덜 깊다. VA는 명암비가 높아 검은색이 깊은 대신 빠른 장면에서 잔상이 보일 수 있다. OLED는 완전한 검은색과 매우 빠른 응답이 장점이지만, 고정된 화면을 오래 띄우면 번인을 조심해야 한다. 요즘은 드문 TN은 응답이 빠르고 시야각과 색이 약하다. 같은 패널 안에서도 제품마다 품질 차이가 크니 성격만 참고하고, 사무용으로 OLED를 오래 켜 둘 계획이라면 화면 보호 기능과 보증 조건까지 확인한다.
단자와 스탠드
노트북을 연결한다면 USB-C 하나로 화면 출력과 충전을 함께 지원하는지 본다. 케이블 하나로 끝나 책상이 깔끔해진다. 다만 노트북의 USB-C 포트가 화면 출력을 지원하는지, 모니터가 주는 충전 전력이 노트북에 충분한지도 함께 봐야 한다. 스탠드는 매일의 편안함을 좌우한다. 높이 조절이 되면 화면 위쪽을 눈높이에 맞추기 쉽고, 틸트가 되면 반사를 줄일 수 있다. 기본 스탠드가 고정형이라면 뒷면에 VESA 구멍이 있는지 봐 두면 나중에 모니터 암을 달 수 있다. 창문을 등지고 앉는 자리라면 무광 화면이 편하다.
용도별로 짧게 처방하면
쓰임새는 크게 세 갈래다. 문서·웹·영상 시청 위주라면 선명한 글자와 넓은 작업 공간이 먼저다. 빠른 움직임이 중요한 게임이라면 주사율과 응답 속도, 사진·영상 편집처럼 색이 중요한 작업이라면 색 정확도와 화면 균일함이 먼저다. 셋 중 무엇이 먼저냐에 따라 앞에서 지운 항목이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가장 오래 하는 일 하나를 기준으로 고른다. 하루 여덟 시간 문서를 보고 주말에 가끔 영화를 본다면 기준은 ‘문서’다. 모든 칸을 최고로 맞추려 하면 예산만 부푼다.
| 주로 하는 일 | 크기·해상도 | 패널 | 주사율 |
|---|---|---|---|
| 문서·웹·영상 시청 | 책상 깊이 안에서 24인치 풀HD 또는 27인치 QHD | IPS 무난 | 60Hz면 충분, 100Hz 안팎은 덤 |
| 사진·영상 편집 | 27인치 QHD 이상, 32인치 이상이면 4K | IPS, 색 정확도·화면 균일함 우선 | 우선순위 낮음 |
| 게임 | 내 그래픽 성능이 감당하는 해상도 | OLED(번인 주의), 예산형은 TN, 영화도 즐기면 VA | 144Hz 이상, 컴퓨터·케이블이 받쳐 줄 때만 |
문서 위주라면 선명한 글자와 넓은 작업 공간이 전부다. 주사율과 HDR에 쓸 돈을 해상도와 높이 조절 스탠드로 돌린다. 편집을 한다면 색과 균일함이 먼저라 같은 IPS라도 제품 간 차이를 리뷰로 확인할 가치가 있다. 게임을 한다면 주사율이 남는 항목인데, 내 컴퓨터가 그 장면 수를 실제로 뽑아 주는지부터 본다. 높은 해상도와 높은 주사율을 한꺼번에 노리면 그래픽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영화와 영상 감상을 자주 한다면 검은색이 깊은 VA나 OLED가 눈에 들어오겠지만, 하루 종일 같은 창을 띄워 두는 사무 화면이라면 OLED는 번인 걱정까지 함께 사는 셈이니 화면 보호 기능부터 확인한다.
상자를 뜯은 날 할 일
설치하고 끝이 아니다. 기본 설정이 모니터의 능력을 다 쓰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컴퓨터의 디스플레이 설정에서 해상도가 권장 값인지, 주사율이 최대로 잡혔는지 확인한다. 고주사율 모니터를 사 놓고 60Hz로 쓰는 일이 흔하다. 기본 케이블을 쓰다가 다른 케이블로 바꿨더니 주사율이 낮아졌다면 케이블 규격부터 의심한다.

교환 기간이 지나기 전에 흰 화면과 검은 화면을 한 번씩 꽉 채워 띄워 보고, 꺼지거나 계속 켜진 점, 심한 빛샘이 없는지 본다. 화면 모드는 매장용 진한 모드보다 표준이나 sRGB가 자연스러운 색에 가깝고, 처음 밝기는 대개 매장 기준이라 집에서는 눈부시니 방 조명에 맞춰 낮춘다.
여기까지 했다면 남은 건 한 가지다. 일주일쯤 써 본 뒤 목과 눈이 편한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 불편하다면 새 모니터를 찾기 전에 화면 높이와 거리, 스탠드 각도부터 다시 만져 본다.
화소 밀도와 프레임 시간은 공식으로 계산한 값이다. 실제 화질과 지원 기능은 제품마다 다르니 제조사 사양과 안내를 먼저 확인한다. 특정 제품 구매를 권하는 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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